화병, 아무도 내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화병의 가장 큰 원인인 가정불화화병의 가장 큰 원인인 가정불화

 

 

 대기실에서 들려오는 대화에서 목소리가 커지면, 저도 모르게 귀 기울여질 때가 있습니다.흥분한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습니다. 간간히 탄식이 섞여있는 말들의 내용은 같이 사는 며느리가 자신의 말을 전혀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방을 닦으라고 했는데, 걸레로 안 닦고 물티슈로 닦았다’

‘며느리가 자기 비누와 샴푸를 못 쓰게 한다. 내 것은 쓰면서’

‘자기 방 방문도 안 열어준다’

찬찬히 들어보면 큰 문제는 아니지만, 충분히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일들 이였습니다.

그래서 요새엔 며느리가 뭐 말만하면 얼굴에 열불이 올라오고 화가 확 치밀어 아주 거북해 죽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곧 익숙한 목소리의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 왔습니다. 중년의 여성인 그 분이 호소한 증상은 심한 안면경련. 안면경련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바깥에서 들은 이야기로 병의 원인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화병이신 것 같네요.’

환자분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바깥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해주셨습니다.

 

 

[가슴속의 火로 인한 병, 화병]

 

 

 화병을 가진 분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증상을 표현하며,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신체적 증상과 함께 이런 적극적인 태도 역시 모두 화(火)의 기운 때문입니다.

 

諸逆衝上皆屬於火 제역충상개속어화

諸躁狂越皆屬於火 제조광월개속어화

기운이 위로 쳐받쳐 올라오는 것은 모두 화(火)에 속한다. 조급해 하고 사나워 지는 것은 모두 화(火)에 속한다.

 [소문 지진요대론]

 

 화병은 가슴의 답답함, 뜨거운 열감,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 목이나 명치에 뭉쳐진 느낌이 억울하고 분한 감정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이 가슴 속의 화로 인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속에 화가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자꾸 억제하다 보면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감이나 치밀어 오르는 핵심증상 이외에도 입 마름, 두통이나 어지러움, 불면, 가슴 두근거림이 있다면 이것 역시 화병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화병은 우리나라 특유의 병]

 

 

 

 화병은 주로 부부관계나 고부갈등과 같은 가족관계 내에서 시작되며, 그런 문제가 생겨도 가족을 위해 참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환경 때문에 생긴 병입니다. 그래서 화병을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특유증후군’으로 분류했고, 미국의 정신의학회에서도 화병을 우리나라 발음 그대로 ‘hwabyung’(화병)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이런 특수한 가족관계로 인한 화병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죄인 비희가 평소 시부모에게 불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어미가 화병이 나서 결국 죽게되었다는 말이 남편인 유진의 공초에서 이미 나왔다. [조선왕조실록-현종 9년 10월3일]

 

 자세한 속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화병으로 죽인 시어미도 그렇지만 죄인 비희도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화병은 고부관계와 같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가족관계와 인간관계에서 기인합니다. 결혼이 단순한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결합으로 이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딪히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해도 잘 표현하지 않고 억지로 참아야 하는 문화 때문에, 가슴속에 화는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화병의 네가지 단계]

 

 다른 스트레스 질환과 달리, 화병은 동일한 문제에 대한 분노를 6개월 이상 참고 견디며 발전되는 병입니다. 그래서 기간에 따라 분노기, 갈등기, 체념기, 신체 증상기로 나누어 진행되고, 그에 따라 증상이나 치료법이 달라집니다.

 

 분노기 : 문제가 처음 발생하여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화병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감정이 최고로 격화되고 분노가 폭발하는 단계로, 그 기간은 길지 않아 하루 내지 몇 일 종안 지속되다 사라집니다.

 

 갈등기 : 큰 분노가 사라진 뒤 해결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시기입니다. ‘참아야 하나, 말해야 하나?’ ‘용서 해야하나, 끝내야 하나’와 같은 고민이 시작되는 단계로, 이시기는 걱정이 많아 불안이나 불면증 같은 정신적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체념기 : 갈등상황에 대해 체념하고, 참으면서 보내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신체 증상기 : 오랫동안 분노를 억제해서 분노보다는 우울증이 나타나고,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가장 흔한 증상인 가슴 답답함과 치밀어 오름, 목에 뭔가가 걸린 느낌 등이 주로 나타납니다.

 

 

 

[단계별 화병 대처법]

 

화병을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분노를 조절하고, 지친몸과 마음을 달래줘야 합니다. 그래서 분노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걷기 명상법과 화병에 좋은 차를 알아보겠습니다.

 

 화로 인해 분노가 치밀 때는 일단 그 자리를 떠나십시오. 그 자리에서 분노를 폭발시킨다면 문제를 더 키우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피하고 나서 걸을 수 있는 곳으로 나가 걸어다니면서 화를 삭혀야 합니다. 이 때는 호흡이 중요한데, 거칠고 짧게 숨을 쉬기보다는 천천히 숨을 쉬며, 들이쉬는 것보다 내쉬는 것을 2배 정도 길게 하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노가 사그라든 이후에는 갈등상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걱정과 불안이 많아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고민으로 인한 머리의 열을 식히고 기를 통하게 하는 한방차는 바로 치자박하차입니다. 치자는 몸의 열을 끄는 효능이 뛰어나고, 박하는 막힌 것을 소통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박하를 처음부터 넣고 끓일 경우 유효한 성분이 모두 날아갈 수있어 나중에 넣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신체적 증상으로 화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혼자 생활요법을 통해서는 극복하기 힘듭니다. 병원을 찾아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야 합니다.

 

 

 

 

Posted by 우리마을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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